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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재재 - 어머니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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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궁훈호 작성일 2009-02-14 13:45 조회 2,860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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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그린에서 1박 했던 4 women 입니다.
어머니 생신날이었습니다.
보통 어머니 생신은 남자들도 모일 수 있는 저녁모임이나 그 전주 주말에 행사를 했었는데,
올해는 작은 시누의 아이디어로 평일 낮부터 다음 날 오후까지의 일정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근, 남자들은 모두 빼고 어머님과 시누님  두 분, 며느리인 저, 이렇게 여자들끼리만 무무펜션 1박을 한 것입니다.
집 한 채마다 한 팀씩 묵게 되어 있어서 아파트에서만 살던 세 여자는(형님빼고) 우선 이웃 소음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아가씨가 저녁도 다 주문을 해 놓아서 집에 앉아 갖다 주시는 음식으로 편히, 그리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시지만 연로하셔서 오래 걷기가 힘드신 어머님은
이렇게 식구들과 같이 집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편하고 조용히 지낼 수 있게 된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1.
형님이랑 길다란 식탁에 마주 앉아 나누던 이런저런 얘기 중에,
형님이 이집트 여행 중, 세면기의 물빼는 장치때문에 애먹었던 일을 얘기하셔서
말이 난 김에 가는 곳마다 수도꼭지, 세면기, 변기의 작동방법이 달라 곤란했던 일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물 푸는 소리와 웅성웅성, 아가씨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고 가보니 어머님이 세수하시고 세면기 물빼기가 안 되어 아가씨의 도움을 청하고 문제해결에 애쓰시는 중이었습니다.
형님과 저는 눈물나게 웃어가며 stopper를 한 번 더 눌러 해결해 놓고는 데굴데굴 눈물 흘리며 굴러가면서 웃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일어난 해프닝이라 더 웃게 되었습니다.

2.
밤 10시 드라마 시간이 왔습니다.
mbc ‘에덴의 동쪽’을 보시는 어머니
sbs ‘떼루아’를 보시는 형님
kbs ‘꽃보다남자’를 보는 아가씨와 저
의견을 내보지도 못하고 당근 ‘에덴의 동쪽’을 보고 있었지요.
근데 10:30쯤 갑자기 화면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래저래 해보다가 할 수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바람이 세게 불면 그러는 수가 있다며 곧 사람이 갈 거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이 친히 오셨습니다.
그래도 잘 안 되었습니다.
TV를 월드컵 때 산 것인데 TV문제인가 보다시며 이리저리 만지시다 겨우 우찌우찌 화면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장님 나가시고 2분도 안 되어 또다시 먹통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하시던 방법을 복기하며 애썼지만 이번엔 안 통했습니다.
야밤에 다시 전화를 할 수도 없고 하여 포기하기로 했는데 어머님이 리모콘을 달라시며 이리저리 만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안 된다니까, 포기하고 주무세요.' 하는 아가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과 끈기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시는 어머니.
아예 시누와 저는 가져간 '신의 물방울'  만화책을 독파하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TV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80 세가 다 되신 시어머니께서 근본적으로 고치신 것이었습니다.
아가씨와 저는 놀라워하며 '어떻게'를 여쭈었는데 어머님이 서랍 속의 설명서를 읽어가시며 조작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복잡해서 젊은 것들도 들여다 보기가 괴로운 가전제품 설명서를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독파, 고쳐내시다니....
'incredible 할머니'를 보며 어린 것들이 또 깔깔 웃어댔습니다.

3.
아침에 눈을 뜨니 옆으로 긴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눈이 나쁜 제겐 꼭 배병우 소나무 등걸 사진처럼 보였습니다.
아래층에 주무신 어머님은 아래층 긴 창의 풍광이 꼭 박수근 그림 느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는 창문이 참 멋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는 게 편해서 아파트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제가 '창호의 멋'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찬찬히 둘레의 창호를 보니 정말 멋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수많은 그림을 무색하게 하는 잘 만들어진 창호를 감상했습니다.

4.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젊은 여자 셋은 끊임없이 어제와 오늘 있던 일을 얘기 나누고 있는데
어머님은 벽난로의 나무를 이리저리 불쏘시개로 잘 타도록 하고 계셨습니다.
그 재미에 푹 빠지신 어머님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5.
추천받은 ‘마라쓴물온천’에 가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온천을 했습니다.
물받는 동안 설명을 들으니 4번 때밀기를 해야 한다는데 2번 밀고 기운이 빠져 간신히 1번 더 하고 나왔습니다.
시어머님과 시누, 올케가 같이 목욕을 했다는 것이 더 신기하기만 한 일이었습니다.
온천물이 좋아 개운했고 무엇보다 비누, 샴푸를 쓰지않으며, 물기를 닦지않고 말려서 수건도 필요없는 온천이라 준비없이 떠난 저희에게 더 좋았습니다.

집에 와, 내내 펜션에 있다가 온천하고 왔다니깐 애아빠 말이 ‘다음부턴 집에 방하나 비워 넷이 같이 자고 목욕 다녀오라.’ 는 겁니다.
단박에 ‘No!'를 날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개운함과 맑은 공기, 명화 유리창은 우리 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네 여자들이 끊임없이 나눈 얘기는 그날 그곳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이어질 수 없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다 여기에 풀어놓을 수 없어 ‘재재재재’ 란 제목으로 대신합니다.

강화의 시계는 천천히 가던데, 서울에 오니 빨리 갑니다.
이런 좋은 날을 78년전 마련하고 태어나신 우리 어머님과
뜻깊은 날로 만들어주신 두 시누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애써 주신 무무펜션, 안팎 두 사장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P.S.
글을 쓰면서도 그 때를 떠올리며 계속 폭소를 터뜨리니까  '뭔 일인고' 궁금해 하는 애아빠에게 몇 대목을 읽어 주었습니다.
뜸부기같이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 촌철살인을 하는데 이번에도....
4명의 female 이라며 'F4' 란 별명을 지어주는 것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럴 듯해서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F4.... 날이 풀리면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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